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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하였으며 애민, 양민 정신과 민본정치는 어느 임금이 따라올 수 없는 민족문화의 혁명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영명한 자질을 바탕으로 애민에 한없이 부지런했지만 건강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다른 병보다 좋아하는 책을 보기 위하여 눈병 치료에 고심을 하였으나 방도가 없었습니다. 왼쪽 눈이 실명 할 정도가 되어 어두운 곳은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으며 정사를 친히 다스릴 수 없다하여 첨사원을 두고 세자로 하여금 다정하게 하려고 하였으나 대신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궁궐에 와 아뢰기를 "청주와 전의 목천에 신비의 우물이 있는데 물맛이 마치 후추처럼 쏘는 맛을 내어 이를 초수(椒水)라 부르는데 여러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고 했습니다.
전의 초수는 청주 초수보다 더 빨리 치료가 되는 것을 보고 받고 전의 초수에 행궁을 짓도록 명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전의 초수를 떠서 약효를 보존하려면 저녁에 해가 질 때에 떠서 다음날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10시간 안에 물을 날라야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종실록에 보면 세종 26년 (1444년) 7월 4일 전의 초수에 가장 잘 달리는 말을 역마다 2마리씩 배치하고 오로지 약수만을 수송하게 하는데 이렇게 매일 물을 떠서 올린 결과 세종대왕의 눈병은 서서히 낫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종 27년 (1445년) 4월 13일 영의정 황의, 좌의정 신개, 우의정 하연, 좌참찬 이숙치, 우참찬 정인지가 와서 문안 인사를 올리니 세종대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병이 다 나았다"고 하시면서 기뻐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